HOME > 민우활동 > 민우뉴스
TOTAL : 197, PAGE : 10 / 10, CONNECT : 0
제목    |    중국으로 매매된 버마여성 (출처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작성자 신환규 작성일 2007/08/07 조회수 6338

[버마 여성단체들에 의해서 버마 군부가 소수 민족 여성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집단 성범죄가 잇따라 국제 사회에 보고 되고 있다. 버마 민주화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길 원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길 요청하고 있다.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정당) 한국지부의 자료 협조를 받아, 일다에서는 버마 소수 민족 여성들의 인권 실태와 버마군부에 의한 성범죄에 대해 연재 보도한다. -편집자 주]

일자리 찾아 국경지대 오는 여성들 매매돼

태국에서 활동 중인 카친여성연합(KWAT)은 버마과 중국 국경을 넘는 카친 족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 실태를 보고서를 통해 고발했다. 2000년부터 5년간 발생한 63건의 여성 인신매매 사례를 조사한 것으로, 주로 탈출한 여성이나 그 가족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다.

카친 족은 주로 중국, 인도 국경지대인 버마 북동부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이며 1백만~1백50만 명 정도가 산다.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특별히 최전방 지역으로 분류되어 기독교가 널리 전파된 곳이기도 하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지역 내에선 반정부 운동이 거세졌고, 마침내 1961년 무장저항운동을 기점으로 버마 최대 저항운동단체인 카친독립기구(KIO)가 탄생했다.

KIO는 1994년 버마 군부와 정전 협정을 맺고 이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전 협정은 수십 년에 걸친 정치적 분쟁의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카친 주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군부 독재의 지배를 받게 됐다. KIO 부대 주변을 중심으로, 지역에 주둔하는 버마군의 수는 3배로 늘어났다. 이는 곧 토지 몰수와 강제노동, 재산 강탈 등으로 이어졌다.

수십 년간의 내전과 버마 사회주의 정권의 고립 정책(1962~1988)으로 카친 주의 경제상황은 매우 악화됐다. 그러나 1988년 개방경제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 국경간 무역협정에 서명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변화했다. 버마는 중국에 목재와 비취, 옥 등을 수출하고 중국산 제품을 대거 수입했다. 이에 따라 버마-중국 국경 지대 인구도 급증했으며 특히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곳으로 몰려왔다.

이 국경지대에는 성매매 수요가 많았고 수입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아, 갈수록 성 산업 종사자의 수가 늘어났다. 국제 사회는 버마의 심각한 인신매매 행태에 대해 많은 비판과 제재 조치를 취해왔다. 그러자 버마 군부는 1998년 여성과 어린이 인신매매에 대한 국가 대책을 발표하고, 각 언론 매체를 통해 ‘버마는 인신매매와의 전쟁 중’이라며 홍보를 계속해왔다.

그러나 KWAT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인신매매 여성들의 수가 잠시 감소했다가 2003년에 3배 이상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가난이다. 일자리를 찾아 국경지대로 오는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타깃이다. 2002년 3월에 한 주부는 마약에 찌든 남편 대신 돈을 벌려 왔다가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한다.

공부하고 싶어서, 신분증을 사기 위해서

“우리 집이 정말 가난해요. 아이들도 6명이나 있고요. 제 남편은 마약에 중독되어서 제가 농사일을 해서 먹고 살았어요. 그 일로는 하루에 500짯 밖에 벌지 못해요. 8명이 먹고 살기에는 어림도 없는 돈이죠. 아이들이 산에서 캔 채소나 강에서 잡은 고기를 팔아서 먹고 살아요. 애들 학교라도 보내고 싶어서 돈을 더 벌려다가 화를 당했어요.”

버마에서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열악한 교육 여건이다. 가난한 부모들은 비싼 돈을 들여 딸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는다. 특히 맏딸은 돈을 벌어 동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버마 정부에서 교육 지원을 별로 해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돈벌이에 나서기도 한다.

한 여성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열여섯 살 손녀를 국경지대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2003년 4월에 한 여자가 손녀한테 일자리를 찾아준다며 국경 쪽으로 데리고 갔어요. 내년에 학교 다닐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죠. 저는 말리고 싶었는데, 학비를 대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에요. 학비는 계속 오르는데, 시장에 나가 나물을 팔아서 먹고 사는 처지라…..”

또한 많은 버마 여성들은 신분증을 사기 위해서 국경지대의 비교적 보수가 좋은 일자리로 몰려든다. 버마인들은 국내 여행을 할 때도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는데, 오랜 내전으로 인해 전체 인구의 2/3가량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 신분증이 없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고, 대입 시험을 볼 수도 없다는 점이다. 장거리 여행시 차표를 살 때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며, 검문소에서 종종 확인한다. 신분증이 없으면 이동할 때마다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줘야 하는 실정이다.

“신분증을 재발급 받는데 최소한 1만짯이 드는데,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제 일당은 500짯 밖에 되지 않아요.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시험을 보려면 신분증이 필요해요.” 국경지대에서 속아서 중국으로 끌려갔다가 도망 나온 14세 소녀의 말이다.

소개업자들, 성매매 조직이나 중국남성에 팔아 넘겨

국경부근 식당에서 일하면 월 5천짯 정도 벌고, 가정부는 보통1만8천~3만짯을 벌 수 있다고 한다. 소개업자의 주선으로 중국에 일하러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음식에 약을 넣어 여성들을 중국으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인신매매를 당한 여학생도 있다.

소개업자들은 일단 여성들을 국경부근까지 데리고 간다. 그러나 도착하면 일자리가 없다면서, 월급도 많고 일자리도 많은 중국이나 태국으로 가라고 한다. 이들을 데리고 가서 비싼 값에 성매매 업소나 아내가 필요한 남자들에게 팔아 넘기는 것이다. 소개업자가 미리 거금의 선금을 챙겨 도망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미티키이나 출신의 한 여성은 2003년 중국 남자에게 아내로 팔렸다가 부모의 도움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국경에 도착해서 허름한 숙소에 머물렀어요. 소개해준 사람이 중국에 가면 한 달에 500~600위안을 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를 중국인에게 1만5천 위안을 받고 팔아 넘겼어요. 저는 남편 될 사람에게 결혼을 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부모님을 모셔왔죠. 부모님이 와서 저를 구해 주셨어요.”

하루 아침에 성매매 여성이 되거나 중국인의 아내가 되어버린 여성들은 종종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감시를 뚫고 탈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설사 돌아온다고 해도 ‘더러운 여자’라는 낙인을 찍히게 되고, 성병이나 AIDS에 감염되어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다.

25세의 한 여성은 중국인에게 팔려가 아들을 낳고 6년 동안 살다가, 몸이 많이 아파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신매매의 충격, 사회로부터의 멸시, 아이를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 등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1997년의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라이자에서 일하는 걸로 알고 갔었죠. 그런데 거기서 중국인에게 팔려갔어요. 위염과 심장에 문제가 생겨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제 가족들이 인신매매범을 고발했는데, 오히려 저를 비난하고 협박을 하더라고요.”

중국 정부도 팔려온 버마여성 인권 보호해야

지난 1996년 버마 군부 SPDC는 여성문제 국가위원회 (MCWA)를 창설했다. 여성과 어린이의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두 사건에 대해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한 할아버지는 광산에 성 접대 용으로 팔려간 손녀를 찾기 위해 MCWA에 두 번이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03년 4월에 제 손녀딸이 낯선 사람들과 함께 사라졌어요. 그때 저는 집에 없어서 이웃들한테 이야기를 들었죠. 참 똑똑한 아이였는데, 10차 표준시험을 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죠. 나중에 금광의 ‘매춘부’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MCWA에 두 번이나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어디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카친여성연합(KWAT)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죄자에 대한 실질적인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가 인신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 제한조치를 취한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할 때 소개업자들에게 의존함으로써 더 심각한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KWAT 현 버마 군부의 정치적 개혁을 주장하며, 특히 중국 정부가 버마 군부에 대해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중국으로 매매된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버마의 전쟁은 진행형이다. 오늘도 버마에서는 인신매매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빈곤과의 전쟁 그리고 저항 세력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신매매는 시간이 갈수록 급증하고, 마약재배사업 역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는 버마 군부의 경제적 이권이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버마 정부가 선언한 이 전쟁들에서 적은 바로 버마 군부 자신이다. 여성단체들이 고발한 버마 소수민족들의 차별 실태는, 군사 독재 청산과 정치 개혁 없이 버마는 그 어느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기사는 2007신문발전기금 소외계층 매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www.ildaro.com


  

  
홍성다녀온 이야기
"하림 닭고기 항균제 검출" ...소비자단체 의뢰 시험
Copyright 1999-2019 Zerobo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