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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사] “때리고 발로차고 강간까지 하려던 모습은 어디로 간거니?”
작성자 gunpo 작성일 2006/08/09 조회수 3904


내 안의 목소리

5개월 전, 내 콧대는 보도블럭 위의 커다란 돌마냥 볼록 나온 곳이 없었다. 5개월 전, 나는 공포가 동반된 아픔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2006년 2월10일 저녁 6시께. 사랑니를 빼고 마취가 덜 풀려 얼얼한 상태. 자취생으로서 사랑니를 뺀 아픔에 전복죽 정도는 먹어줘야 되지 않겠냐며 죽집을 들렸다. 현관문을 열고 뜨거운 죽을 내려놓고 다시 현관문을 닫으러 뒤로 손을 뻗은 순간 문고리 대신 그 자리에는 검은 색 복장의 커다란 생물체가 서있었다. 1초, 2초, 3초. 사태를 파악하는 사이 머리 하나는 더 컸던 생물체가 딱 한마디 던졌다.

“조용히 하고 들어가.”

그는 순식간에 내 뒤로 다가와 한 팔로 목을 조르고 다른 팔로는 현관문을 잠궜다. 그는 나를 질질 끌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뉴스에서만 봤던 일이 내게 터졌구나, 싶었다.

나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살아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목이 졸려왔다. 급격한 산소공급의 중단으로 다시 몸에 힘이 빠지고 또 조금 풀렸다 싶으면 다시 힘을 주기를 반복하는 동안 머릿속에는 건조대에 올려놓았던 식칼이 떠올랐다. 그래, 그걸로 찌르면 난 살 수 있을지 몰라 싶어서 몸싸움을 하며 천천히 싱크대 쪽으로 이동했다.

옳거니, 어둠 속에서 보이는 내 식칼. 손을 뻗어 순식간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보이지 않는 내 뒤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였다.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똑같은 경험을 했을 과거의 여자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내가 죽이지 않으면 앞으로 당할 여자들을 생각하며 휘둘렀다. 허나 얼마가지 않아 칼은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척추가 오싹했다. 나의 무기가 도리어 도리어 내 생명을 위협하는구나 싶은데 놀랍게도 그는 옆에다 칼을 버렸다. 그는 부엌 옆 화장실 안으로 나를 던져 넣고 얼굴과 몸을 사정없이 때리고 발로 찼다. 화장실 벽에 내 머리를 갖다박기까지 했다.

“돈만 갖고 갈게 응? 돈만 갖고 간다고 했잖아!”

“돈만 갖고 갈테니깐 뒷다리 쭉 뻗고 엎드려!”

나는 죽은 개구리마냥 다리를 뻗고 손은 뒤로 한 채 차디찬 화장실 바닥에 엎드렸다. 힘이 빠진 나는 그래, 강간을 당한다 해도 잡아야 하니깐 얼굴이라도 보자 싶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짐을 뒤지며 자꾸 고개를 든다고 화내던 그, 어느새 내 위에 서서 나를 바라봄이 느껴졌다. 벨트버클 소리가 ‘창 창’ 하며 들려왔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강간당하고 살해까지 당하지 않는다면 24시간 이전에 병원부터 가야지, 그리고 제발 에이즈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벨트버클 소리가 멈추고 그가 갑자기 화장실을 나갔다. 화장실 문을 보며 저것만 잠그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도 더 이상 싸울 힘이 없어 그대로 누워있는 자신을 원망하며 그가 다시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화장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현관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자취는 사라졌다.

5개월이 지난 2006년 7월17일 밤 9시께.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범인이 잡혔다고 진술서를 쓰러 와달란다. 그 사람, 어설픈 초범이 아니라 50여명의 여자들에게 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일명 ‘발바리’였다. 알고 보니 내 식칼에 찔려 피가 나서 도망 간 것이었던 그 사람은 내가 화를 내자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고 울먹이기까지 하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날 때리고 발로 차고 위협하고 강간까지 하려던 너의 모습은 어디로 간거니?

5개월간 참 많이 힘들었다. 지금도 임상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사고 뒤 첫 한달은 외출은 커녕 집에 찾아오는 낯선 사람에 대해서도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피하기만 한다면 결국 그대로 보이지 않는 상처는 곪고 곪아서 누런 고름이 나올 것이기에 내 자신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가는 곳마다 내 이야기를 했고, 여성주의 계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들을 접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혹시나 뒤에서 누군가 따라 올까봐 느껴지는 극심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녁시간에 외출을 했고, 4월 말부터는 본가에서 나와 다시 자취를 시작했다. 그리고 내 스스로 감당이 안될 만큼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커져버릴 때면 기도를 하였다. 이 일이 결코 나를 붙잡는 일이 되지 않도록, 나를 한층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강인한 나를 길러나가기 위한 기도를 하였다.

아마도 이 경험은 내 삶에서 절대 잊혀지지 않는 악몽 같은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악몽일지라도 이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하나의 ‘생존자’로서 나는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바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 혹은 나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한 여성들이 스스로의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상처를 치유해나갔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멋진 여성들이기에. 크리스(chris)/[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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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원본주소: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1478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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